잡 생각

낙선소감

낭만 뱃사공 2011. 1. 7. 01:15

왜 당선소감만 있고 낙선 소감은 없는 거냐고..

그래서 낙선 소감을 써보기로 했다, 왠지 낙선 소감을 써야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말이 영어로 move on, go on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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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초에 두 군데 신문사에 동화를 각각 한편씩 써서 보냈다.

그동안 보낸 우체국 말고 다른 우체국을 찾아보기로 했다. 시쳇말로 쪽팔리기도 하고

왠지 우체국 터가 안좋아 자꾸 떨어지는 것 같았으므로..

경건한 마음으로 프린터에서 인쇄되어 나오는 종이를 한장한장 모았다.

역시 경건한 마음으로 봉투에 주소를 쓰고, 테이프로 봉했다.

 

또 역시 경건한 마음으로 차도 안타고 한발한발 떼어 우체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누군가 나를 불렀다. 머언 타향땅에 산지 10년이 넘었지만

길거리에서 나를 부를 남자는 없는데 싶어 돌아보니 하얀 백마 아니 하얀 차를

탄 신문사 편집부국장이다.

 

왠지 좋은 징조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한테 전화할께요 하고 손을 들어 귀에 댄다.

"그래 신문사에서 전화 꼭 와라"

또또 역시 경건한 마음으로 우체국에 가서 우편물을 부치고 왔다.

 

그날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무슨 꿈을 꾸었는지 깊이 생각했다.

여러가지 개 꿈들 사이에 꾼 하나의 꿈

 

우리집에 세탁기가 두개 있는데 작은 세탁기를 누가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았다.

원래 있던 자리에 세탁기를 도로 가져다 놓았는데 물이 자꾸 넘친다,

뚜껑을 다시 닫으면 뚜껑이 튀어 오르고 말을 안 듣는다

뚜껑을 고치고도 물이 넘쳐 자세히 보니 종이 한장이 세탁조와 세탁기 껍데기

사이에 걸려있다. 그 종이를 내가 뺏는지 안뺏는지 생각이 안난다,

아무래도 마지막 한 장 때문에 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느날 글나라에 들어가보니 대문에 김재원 선생님의 인터넷 제자가 당선되었다고 한다,

나도 인터넷 제자지만 나는 분명히 아니고.. 다행히 내가 응모한 신문사는 아니다.

 

그날부터 글나라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그동안 사실 글나라보다는 옷가게 사이트가

나의 방문 우선순위 사이트였다. 내가 응모한 신문사에서 다른 분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이 있나없나 확인하러..그게 버릇이 되어 이제 글나라에 자주 들어오고 어제 오늘 계속 글을 올리고 있다ㅠㅠ

 

벌써 당선통보가 오는 모양인 것 같아 전화기를 자주 확인했다,

평소 전화도 잘 안받고, 내팽개쳐 두다가, 특히 모르는 전화는 절대 안받는 내가

모르는 전화도 친절한 목소리로 받기 시작했다.

 

글나라에 올라오는 당선소감과 심사평을 꼼꼼히 읽었다.

내 가슴을 치는 심사평!

 

그래 내 동화에는 상징과 비유가 없지!-> 나도 현실과 환상사이의 쐐기가 되는 동화를 써야지.

그래 내 동화에는 환상이 없지!-> 나도 영성을 깨우는 환상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지.

...

 

심사평을 읽으면서 내 동화에 대해 생각했다. 뭐가 부족한지, 세탁기에 끼어있는 그 마지막 한 장에

무엇을 다시 채워야 하는지.

 

글나라 송년회에 갔다. 롯데마트에서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내려오는데 두 분이 보였다.

어쩐지 범상치가 않아서 그 앞에서 멈칫했더니 먼저 나를 알은체 해주셨다, 고맙게도.

나는 원래 인상이 좀 사나워서 다른 사람들이 절대 먼저 아는척하는 법이 없는 편이다.

 

한 분이 경남일보에 당선되신 김임지님이셨다.

나는 그 분을 붙잡고 평소 궁금하던 것을 물어보았다.

 

꿈은 꾸셨나요? 나는 꿈이 잘 맞는다. 꿈이야기를 하라면 한참 해야 한다.

전화는 뭐라고 오나요?

기타 등등.. 이야기를 듣는데 내가 설렜다. 그리고 나중에 소매를 살짝 잡았다.

나는 미신을 잘 믿는다.

 

강원일보 시 당선자이신 분도 오시고, 도담 안덕자님의 동화책도 받고,

아가도 만나고.. 모처럼 즐거운 송년회였다.

 

나는 이주일동안 설레며 전화를 받았다.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이 나이에 설레며 전화받을 일이 뭐 있겠나.

 

기다림이 모두 끝났다.

이제 앞으로 나아갈 차례이다.

 

모든 당선소감의 마지막에 나오는 내용을 나도 써 보아야겠다.

 

저의 동화에 부족한 점을 잘 알아보시고 안 뽑아주신 밝은 눈의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의 심사평에서

나는 배웠습니다. 저에게 동화를 가르쳐 주신 김재원 선생님, 떨어진 것은 제가 부족해서이지 잘못 가르쳐주신 때문은

절대절대 아닙니다. 마누라가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남편, 계속 무관심해 주길 바라고,

방학인데도 보충수업하러 가는 아들 사랑하고 고마워. 신년초부터 눈온다고 뛰어나갔다가 엄마의 열쇠꾸러미를 잃어

버리고 돌아온 딸, 그래서 앞으로 3년동안 엄마의 딸이 아니라 몸종으로 살기로 약속했지? 아까 커피

맛있었어. 앞으로 계속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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