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할머니가 치매십니다. 서울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할머니를 돌봐주고 계신 시설에 들렀습니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시설이라는데 여섯분 정도의 치매 할머니들을 모시고 계시더군요.. 그동안 할머니를 모시던 작은 아버지어머니집에서 한 30분 거리라 자주 찾아뵐수도 있고..깨끗하고 정성껏 모셔준다고 해요..
첨에 들어갔을 때 풍채 좋으시던 할머니를 못알아 보았어요. 틀니를 빼고 유동식으로 식사를 하시니 얼굴도 작아지고 몸도 작아지고..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돌보아 주시는 분이 그러시더군요.. 치매상태가 되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드러난대요.. 사랑받고 살았는지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 저희 할머니는 4살에 친어머니를 잃으시고 계모밑에서 자라다가 14살에 시집을 오셨대요.. 시집와서 동서들이랑 살다가 17살에 초경을 하니 18살에 정식 혼례를 치러주고 합방을 시키시더랍니다. 그리고 19살에 첫아들을 낳으셨어요. 그리고 마흔까지 내리 일곱을 낳으시고 중간에 하나를 잃으셨죠. 그 와중에 격동의 한국사를 다 겪으셨어요. 일제시대, 해방, 전쟁, 근대화..
그런데 할머니가 매일 주방에 나와서는 노루재(?)를 어느 길로 가냐고 물으신대요.. 그러면서 우리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거기 가봐야 한다고.. 시집와서 15살엔가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셨대요.. 그런데 거길 안보내주었다네요.. 시할머니의 시어머니가.. 그게 한이 되어서 지금도 매일 같이 친정가는 고개의 갈림길에 서서 묻고 계신대요..
그 이야길 듣고 생각했지요.. 내가 치매가 되면 어디에 머물러서 그걸 되풀이할까..모두들 숨겨진 사연이 있고 그 중의 몇몇은 소화되지 않고 내안에 머물렀다가 저승으로 지고 가겠지요.. 도력이 높으면 모두 다 풀고 가겠지만.. 할머니가 맺힌 모든 것을 풀고 편안히 가시길 바래요
05년 4월 19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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