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삼인 아이의 대학교 설명회에 갔다.
신촌에 있는 작은 s대에라도 갈까 싶어 한시간 넘어 찾아갔다.
입시설명회를 듣는 동안 그 젊음이 부러웠다.
신촌과 안암을 오가는 그런 축제가 아니라 자기네들은
현해탄을 오가는 축제를 한단다. 그러면서 아이들 꼬시느라
만든 멋진 그림과 동영상 등등을 보여주는데 50줄 가까운 내가
가슴이 뛰는 거다.
내가 다시 그 시절을 산다면, 인생의 5월을 여왕처럼 누릴텐데..
86년의 오월은 검은색이었다.
캠퍼스엔 검은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해 오월에만 7명인가가 죽었다.
도서관에서 떨어져 죽는 걸 보고 국문과 여학생은 집으로 돌아가서 죽었다.
날마다 붙혀지는 대자보를 보며 나도 죽고 싶었다.
그 아름다운 그 시절에 한번도 최루탄 없이 눈물없이 지나간 오월이 없었다.
졸업하고, 서서히 잊어갔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집권했을 때
우리가 바란 민주화된 세상이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한적도 있다.
그러던 어느날 학회에 참석하느라 고속도로를 운전하며 가는데
그가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졌단 뉴스를 들었다.
울며 운전을 하고 학회장에 도착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내가 사는 경상도 어느 시의 합동추모식장을 찾았다.
몇명 없는 쓸쓸하고 초라한 추모식장,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돈을 내고, 혹시 더 쓸쓸할까 싶어 가지도 못하고 뒤에 앉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있었다.
그때 그 눈물은 그가 죽어서 슬픈게 아니라 내 젊음이, 내 청춘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구나 싶어서 울었다.
나는 아직 봉하마을을 찾아간적도 없고, 집 근처에서 한다는 추모 공연에도 가보지 못했다.
나는 아직 직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잃어버린 내 인생의 오월을 아이가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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