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스크랩] 7/9일 망통-밀라노-베로나

낭만 뱃사공 2011. 10. 6. 13:39

오랫만에 쓰는 여행기입니다. 회고록이 되었네요.

 

망통에 도착하여 어제 무지 어렵게 숙소를 구하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왕언니의 바다좀 보라는 소리에 깨었다. 못들은척하고 좀 더 누워있다가 일어나 바다를 보니 어젯밤에 고장났다고 툴툴대던 욕실문에 대한 불만을 다 갚아줄만큼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아름다운 바다라고 그냥 총칭하여 버리기엔 정말 말이 부족했다. 아주파란 바다와 줄지어 서 있는 요트들.. 평생 그런 바다 색깔을 처음 보았다.

 

널어놓은 빨래를 걷어 가방에 넣고 아침을 해 먹고 이태리를 향해서 출발했다. 이태리에 가면 물가가 비싸고 숙소가 비싸다고 하여 까르푸에서 장을 봐서 떠나기로 했다. 장보러 가다가 언니들 둘은 더 가고 동생들 둘은 생각보다 길이 멀어 차를 가지고 까르푸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이것이 이날의 역정의 시작이었다.

 

차를 가지고 까르푸를 찾는데 분명히 조금만 더 가면 마켓이라고 하여 조금 더 가도 까르푸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찾으러 다니며 헤매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아주 아름다운 해변때문에 아주 맑은 날 구름하나 없는 하늘, 푸른 바다... 푸른이라는 말이 모자라다. 이태리 말로는 그런 바다 색을 azur라고 한다. 우리가 이태리 축구선수단을 아주리 군단이라고하는데 아주리가 쪽빛 바다 색깔을 가리킨다고 한다. 푸른데 파랗고, 맑고 투명한 파랑. 우리나라 동해바다색에서 초록빛을 뺀 색깔이 그렇까?

 

까르푸를 찾다가 길가는 아줌마한테 까르푸가 어딨냐고 물어봤다. '까르푸'하는데 못알아 듣는 것이었다. 아무리 말해도 못알아 듣길래 차안에 굴러다니는 까르푸 봉지를 보여줬다. 그랬다너 '꺄르푸우' 하는데 내 까르푸와 그녀의 꺄르푸우가 뭐가 다르단 말인가??

 

언니들이 언젠가는 오겠지하며 차옆에서 요가를 하며 기둘리는데 대구아지매는 뙤약볕에서 기다렸다, 거기 힘드니까 여기와서 쉬면서 기다리라고 해도 말을 안들었다. 이 차이가 도대체 뭘까??^^

 

언니들이 드디어 왔는데 까르푸가 없어 그냥 마켓에 들어갔는데 뭔 구경을 잘 했다고 했다. 아까비..

 

이제 드디어 프랑스를 벗어나 이태리로 향했다. 이태리와 프랑스를 잇는 고속도로로 진입하러 가는 길에 어느 작은 길에서 주차되어있던 어떤차가 우리 앞에서 후진을 하여 차를 뺏다. 우리 차와 닿는 것 같아 놀라는 표정을 했더니 멋진 남자 운전사가 나를 보고 윙크를 했다. 그래서 좋아가지고 그차를 따라가자고 했더니 짝이 안맞았다. 거기엔 남자가 3명이었던 것이었다. 천안댁 언니가 양보한다고 했지만 그럴수는 없어서 그 차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cote de azur.. 를 따라 이태리에 진입했다. 이탈리아에선 먹어봐야 할 것이 젤라토라 불리는 아이스크림, 커피라고 왕언니가 말했다. 먹어야 할 것이 어찌 그것뿐인가.. 피자 스파게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태리 피자와 커피를 먹었다. 역시 맛있었다. 진열된 수공예로 만든 양념 유리병도 이뻤으나 가지고 다니다가 깨질까봐 살 수 없었다.

 

 

왕언니가 말하기를 이태리의 첫 목적지인 밀라노엔 남자들이 멋있다고 했다. 잡지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은 남자들이 거리를 마구 활보한다는 것이었다. ㅎㅎ 밀라노에 진입하여 주유소에서 길을 묻고 시내로 진입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전차가 쫓아왔다. 운천하던 천안댁 언니가 너무 놀랐다. 나머지 사람들도 다 놀랐지만 길위에 전차길이 놓여 있어 차와 전차가 같은 길로 다니는데 한국에서 전차길이라고 하면 엄청 위험하다는 생각에 뒤에서 전차가 쫓아오면 겁이 더럭 났다.

 

우여곡절끝에 밀라노 대성당 근처라고 추정되는 곳에 차를 주차했다. 요금을 내는 곳 같아서 주차요금 계신기를 찾았으나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잘 몰랐다. 어느 지나가는 멋진 남자한테(나는 주로 여행중 멋진 남자한테만 물어봤다^^) 물어봤더니 열심히 설명을 해주더니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good luck!! 하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밀라노가 좋아졌다.

 

같은 과의 송모교수는 독일 유학시절 말이 안되다가도 싸움만 일어나면 말이 잘 된다고 하였다. 자기도 잘 모르던 독일말이 싸우기만 하면 튀어나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길에 관한한 말을 잘 알아듣는다. 심지어 미국 언니집에 갔을 때 병원에서 길을 물었는데 10년가까이 미국에 사는 언니와 방문하러 온 내가 들은 내용이 각기 달랐다. 언니가 들은대로 갔더니 길이 틀렸고 내가 들은대로 갔더니 길이 맞았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바르셀로나에서 우리 일행이 왜 헤맸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면서 비웃는 사람이 몇몇 있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여하튼 멋진 남자가 말해서 잘들렸는지, 원래의 공간감각이 발동했는지 주차요금 계산하는 사람을 찾았다. 주황색 옷을 입고 돈을 받고 무슨 표를 주었는데 스티커처럼 긁는 거였다. 역시 길을 물어보고(멋진 남자는 아니었지만^^) 대성당을 향했다. 밀라노 성당은 프랑스 성당과 달리 살아있었다. 지역의 사람들이 찾고 있었고, 심지어 민소매를 입은 관광객은 입장불가였다. 성당이 관광명소가 아니라 성스러운 미사를 보는 곳이가 때문에 민소매나 샌달 짧은 반바지는 원래 입장이 안된다. 한국에서도 그런 차림으로 미사를 가면 쫓겨난다.

 

왕언니가 민소매인 관계로 입장불가였다. 원래 셋이 들어가 하나가 내 잠바를 멋어 왕언니에게 가져다 주고 그걸 입혀서 입장하기로 하였으나 들어가니 나 역시 민소매로 돌아다닐 수 없는 분위기 였다. 그래서 셋이 구경을 하고 나오니 우리의 왕언니가 없는 것이었다!!!

 

셋이서 찾기 시작했는데 다 의견이 달랐다. 먼저 천안댁 언니는 어디서 아이쇼핑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어디서 먹고 있을 것이다. 대구아지매는 뭐라고 의견을 피력했는지 생각이 안난다. 역시 사람들은 자기 수준에서 남을 보는 것이었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나는 왕언니가 어디선가 뭘 먹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왕언니는 천안댁 언니가 생각하는 사람도 내가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었던 것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밀라노 성당 꼭대이에 올라가 우리보다 더 좋은 구경을 했다는 것이다.

 

왕언니를 찾으러 다니다가 밀라노 성당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다가 어떤 청년앞을 지나갔다. 울고 있었다. 옆에 있던 천안댁 언니가 눈물이 떨어지는 걸 보았는데 가슴이 철렁했다고 하였다. 나는 철렁은 안했지만 왜 우는지 궁금했다.

 

 

좀 지나다 보니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울음은 그치고.. 뭔 일일까? 여정이 버전으로 실연?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을 울리나보다. 어디서나 사람의 정서는 같겠지..

 

밀라노 광장에서 비둘기 털에 고생하며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기념품을 구경하고,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는 조형물앞에서 사진을 찍고,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어떤 옷집에 들어갔다. 대구 아지매가 까만 원피스를 골랐는데 이 아지매는 옷을 크게 입는 속성이 있었다. 그래서 한 치수 큰 걸 고르니까 점원인 중년 아줌마가 눈을 크게 뜨고 너무나 단호하게 손으로 포즈를 취하며 이건 너한테 크다, 한 치수 아래를 사라라고 이야기하는데 계속 큰 걸 사겠다고 하면 안 팔 기세였다. 이 아주머니의 프로정신이 놀라왔다. 나도 올케 원피스를 같은 걸로 하나 샀다. 우리 올케도 대구 아지매처럼 날씬 체형이라 대구 아지매한테 잘 어울리는 걸 보니 하나 사줘야 할 것 같아서..

 

밀라노를 떠나 베로나로 향했다. 밤 늦게 도착했는데 어느 까페에서 어느 연인한테 길을 물었다. 지도를 보여주며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냐?묻고 가야 할 곳을 가리키니 열심히 길을 가르쳐 준다. 스트레이트, 스트레이트, 스트레이트 하길래 나도 예스예스예스 했다. 그런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예약을 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숙소의 통금시간인 10시가 가깝도록 숙소를 찾을수가 없었다. 거의 5분전쯤 왕언니와 대구 아지매가 차에서 내려 어떤 이태리 청소년들을 따라 숙소로 향해 뛰었다.

 

그 골목을 나와 차를 세우고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차 옆으로 어떤 흑인 남자애들이 와서 천안댁 언니의 머릴 잡아당기려고 했다. 얼른 창문을 올리고 차를 잠갔더니 차문을 두드리며 우리를 괴롭힌다. 책을 보며 무시하고 있는데 백미러로 대구 아지매가 보였다. ㅎㅎ 지금 생각해도 웃긴다. 나는 겁많은 대구 아지매가 이 차 가까이 오면 얼마나 놀랄까 생각을 하니 그 와중에 재미있었다. 그래서 킬킬거리고 천안댁 언니한테 재 오면 놀라자빠질텐데 어떻게 하지 하는데 대구 아지매가 와서 우리보고 내리라고 차문을 두드렸다. 아직 안가고 서 있는 흑인아이들때문에 차문도 열지 못하고 창문만 내리고 내가 한말은 왜? 였다. 이 일은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대구아지매가 내리라고 한 것 같은데 나는 문을 열어주고 얼른 타라고 하고 문을 잠갔다. 혹인 아이들이 계속 문을 두드리길래 거길 떠났다. 이것이 그날밤 고생의 시초였다, 길찾기 혹은 공간감각에 자신있는 나는 아주 가볍게 그 장소로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베로나의 일방통행많고 꼬불꼬불한 두오모 근처에선 안통했다. 첨엔 놀라서 떠는 천안댁 언니와 대구아지매한테 걱정마! 날 믿어 했지만 도저히 믿게 해줄수가 없었다. 같은 장소를 세번이나 돌면서 길을 잃었다. 얼마나 무섭고 떨리던지!! 지금은 웃기지만 그날은 심각했다. 별별 생각이 다 났다.

 

그러다 천안댁 언니가 내려서 길을 묻고(대구 아지매와 나는 내리는 것도 무서워서 안내렸다!!) 우여곡절 끝에 왕언니가 서 있는 골목을 발견했다. 왕언니는 왕언니대로 화가나서(여권도 없이 몸만 내렸으니 정말 일이 생겼다면 곤란한 사람은 왕언니일 것이다) 뭐라 했지만 내 얼굴을 보고(평소 무표정한 내가 겁에 질린 표정을 한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그날 나는 잘때까지 가슴이 진정이 안되었다. 다음 여행때는 청심환을 꼭 가져가리라..

 

몇번이나 반복해 들은 접수원의 말이 셋은 한방에서 하나는 딴방에서 자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선 셋이자는 방에 가보니 방이 두개 있고 침대가 한방에 두개씩 있었는데 이미 호주에서 온 캐시라는 아줌마가 있었다. 주방도 있고 거실 비슷한 것도 있고 여행을 떠난지 처음으로 집같은 집에 온 것이었다.

 

넷이 함께한 여행은 즐거웠지만 내향형인 나는 혼자 있고 싶었다. 그래서 자청해서 독실을 원했다. 그러나!! 왕언니와 그 혼자자는 방에 갔더니 아마도 옛날에 수녀원으로 쓸때 수뎌들이 벌받는 곳이었나보다. 아주 작고 침대가 덩그러니 놓여져있고 옷장도 하나 있었는데 옷장을 보니 왠지 장화홍련의 그 옷장이 생각나 좀 무서웠다.

 

무서움을 택할 것인가 혼자됨을 포기할 것인가를 잠시 고민하다가 무서움을 택했다. 나는 가끔가다 일요일날 애들한테 시달리다보면 혼자있고 싶고 애들도 귀찮다. 사실은 자주. 그래서 하루중 제일 좋은 시간이 아침에 애들한테 시달리다가 다 나가고 난 집에서 혼자 커피마시며 신문보는 시간이다.

 

그래도 좀 무서워 기도하면서 잠이 들었다.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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