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7/10일 베로나
모처럼 집같은 곳에서 일어나니 기분이 좋았다. 중세의 수녀원쯤 될 것 같은 숙소는 구석구석 아름다왔다. 미로같은 계단과 복도도 그렇고, 덧문도 그렇고, 창문으로 손을 뻗으면 건너편 창에서 내민 손과 닿을 것 같은 좁은 골목풍경도 그렇고, 라디에타에 달린 도자기로 구운, 아마도 습도조절용 장치라고 생각되는 정체불명의 물건도 그랬다. 내가 잔 창문의 풍경도 아름왔다.
모처럼 주방같은 곳에서 아침을 준비하니 기분이 좋았다. 당근도 썰고, 감자도 깍고, 카레와 기분난 김에 하이라이스도 하고, 감자도 오븐에 구웠다. 카레로 아침을 먹고, 구운 감자를 싸서 숙소를 나왔다. 이 숙소는 정말 다시 한번 가고 싶고,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가족끼리는 못간다. 여성전용이라서..
숙소 앞에 차를 세우고(ㅎㅎ 주차비 굳었다). 숙소 근처의 성당을 시작으로 하여 길을 나섰다. 어제 우리를 괴롭히던 아이들 집 1층의 옷집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성당의 특이한 성수반을 구경하기도 했다. 이 성수반은 여행가이드북에도 소개되었는데 노틀담의 곱추간은 사람이 성수반을 고통스럽게 이고 있었다. 입장료를 아끼기 위해 문앞에서 기웃거렸다. 이제 그성당이 그성당이요, 그 성이 그 성이라 절대 입장료 주고 안들어간다^^. 골목을 나와 광장으로 향했다. 이태리는 아직 카톨릭 국가인지 광장으로 가는 골목 한켠에 성모상과 꽃이 놓여져 있었다.
고래 등뼈가 걸린 광장은 중세부터 있던 광장에서 아직도 사람들이 무언가 팔고,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먼저 줄리엣의 집을 찾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인 베로나는 줄리엣의 집, 무덤등이 있고, 여행갔다 와서우연히 티비에서 올리비아 핫세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니 내가 화장실 찾으며 헤맸던 광장이 나왔다. 어! 저리로 돌아가면 화장실인데.. 하면서 티비를 보았다. 여행갔다온 보람이 이런데서 있었다.
아침부터 줄리엣의 집은 인산인해고, 벽에 빼곡이 전세계에서 온 연인들의 소망이 적힌 쪽지가 붙어 있었다. 줄리엣의 창 아래에는 줄리엣 동상이 있었는데 이 줄리엣의 동상의 젖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사람들이 줄을 지어 줄리엣의 동상앞에서 사진찍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안빠지고 줄리엣의 가슴을 만지며 사진을 찍었는데 하도 사람들이 만져서 뺀질뺀질 닳아 있었다. 천안댁 언니는 차마 덥석 못만지고 아래를 만지고 사진을 찍었고, 대구 아지매는 큼지막한 손으로 줄리엣의 가슴을 완전히 뒤덮고 사진을 찍었다. 전안댁 언니와 대구 아지매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마침 그날이 아레나라는 원형 경기장에서 야외 공연이 있어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아레나를 향하여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데 가게마다 들어가 핀도 보고, 옷도 입어보고, 화장품도 보고 그랬다. 나도 약국에 들어가 그 스페인산 살빠지는 크림이 혹시 이탈리아에 있나하여 물어보았으나 없었다. 도대체 스페인에도 없고, 프랑스에도 없고, 이탈리아에도 없는 살빠지는 크림이 어떻게 한국에는 있는 걸까..
아레나 근처의 가이드북에 맛있다고 소개된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고 책을 보여주며 이 책에 니네 음식점이 나왔다고 하니 아주 좋아하였다. 그러더니 가져가서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보스에게 보여준다고 복사를 하였다. 어디서 왔냐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에 대해 알고 있었다. 자기 사촌 동생이 윤다이를 샀다고 하였다. 윤다이는 h발음을 못하는 이태리사람들의 현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사진도 찍어주고 감사합니다가 한국말로 뭐냐고 묻더니 그걸 식탁보에 써 놓고는 오고가며 감사합니다를 한국말로 연발하였다. 이태리 남자들은 기분파인 모양인지 나중에 보니 테이블 차지와 몇가지를 깍아주었다. 우리는 앞으로 이 수법을 써먹기로 했다. 책에 소개된 음식점에 니네 나왔다고 하는거.. 하지만 남유럽 사람들한테는 그게 통했으나 북유럽 사람들한테는 안통했다. 니네 음식점이 책에 나와서 왔다고 하니 그러냐고 하면서 가버렸다. 사람들의 기질이 이렇게 달랐다.
점심을 맛있는 스파게티(그렇게 맛있는 화이트 소스 스파게티는 난생 처음이었다. 과장 아니다. 진짜다. 이태리 국기를 상징한다는(그 이름이 뭐더라) 모짜렐라 치즈에 토마토 얹고, 그위에 허브를 올린 음식도 맛있었고, 허다못해 그냥 빵을 올리브 오일에 찍어먹어도 맛있었다.
점심을 먹고 마찌니라는 명품거리를 구경하였다. 워낙 비싸서 침만 질질 흘리면서 다음에 여행올 때는 사자고 침을 발르면서 구경했다. 하지만 그냥갈수는 없지.. 가죽구두 한켤레에 한국돈으로 6-7만원 정도라서 이태리 수제구두를 이렇게 싸게 살 수 있다니 하며 샀다. 한국에 와서 신고 있는데 아주 편하고 좋다.^^
색깔은 얼마나 아름답던지..백화점에 들어가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소재를 보면 실크나 울이 아니고 폴리인데도 색깔이 좋았다. 이태리에 들어서면서 보았던 바닷빛, 맑은 날씨에 아름답게 보이는 자연의 색깔들이 다 들어 있었다. 색깔이 아주 아름다운 스카프가 만원도 안하길래 몇장 샀다. 귀국 선물용으로..
마찌니 거리에서 사람들이 우루루 모여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이태리 말로는 젤라토라고 한단다)를 사먹었다. 아주 맛있었다. 까르띠에 가게 옆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러면서 가게란 가게는 다 들어가서 구경을 했는데 그 와중에 언제나 뒤쳐져서 겉는 천안댁 언니와 내가 다음과 같은 대화를 했다.
천안댁언니: 영주야 우리가 오늘 저녁에 베네치아에 왜 가야하는거니(그냥 여기서 놀다가 스위스로 가면 안될까)
나: 몰라요(여기도 좋은데 그냥 여기서 놀다가 베네치아는 생략하고 그냥 북쪽으로 가지요)
괄호안의 글은 속마음의 대화다^^.
그래서 왕언니와 대구아지매에게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고 그러기로 했다. 저녁때쯤 숙소앞 쓰레기 통에 구두곽을 수북하게 쌓아두고 차를 타고 이태리를 떠났다.
다시 가고 샆은 곳을 대라고 하면 첫째가 베로나이다. 도착해서 길도 엄청 헤맸지만.. 작은 도시의 아름다움이 좋고, 사람들의 활기가 좋았다. 피자집 아저씨의 감사합니다도 좋았다. 쇼핑거리도 좋았고.. 또 기억나는 것은 저녁때 공연할 아레나에 무대설치를 하던 사람들이 모두 더워서 웃통을 벗고 하는데 그중에 여자도 있었다. 그 힘든 육체노동을 여자가 하는 것도 신기했으나 까만 브라자만 하고 웃통을 벗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베네치아를 생략하고 오스트리아로 출발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살 것 같은 알프스 산을 보니 기분이 청량해졌다. 그리고 제목도 생각이 안나지만 해뜨는 언덕의 소녀인지 뭔지 알프스를 배경으로 하는 동화도 생각이 났다.
어두워질 무렵 이태리는 못 벗어나고 국경 근처의 b로 시작하는 곳에서 숙소를 정했다. 아래는 술집겸 음식점이고 위는 숙소인 곳에서 잠이 들었다. 잠들기 전에 낮에 산 구두와 스카프 옷 등으로 돌아가며 패션쇼를 하고, 또 오랫만에 생맥주를 사다 아침에 구운 감자와 건배를 하고 술도 마셨다. 또 오랫만에 하얗고 포근한 침대에서 비가와서 좔좔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행복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