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아줌마 4인방 유럽가다 7/3일 오르세이 박물관-루브르-노틀담
아침을 남은 밥과 라면으로 때우고 차를 가지고 파리에 들어갔다. 어제 헤매면서 본 파리시내라 만만해 보였기 때문일까? 그런데 차문을 여니 파리시내 지하철 표가 뒷좌석에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사실은 이게 언제 일인지 헷갈린다. 7/1일이었는지 2일이었는지 여하튼 이런 일이 일어났다). 차문도 열려있고.. 누군가 침입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일 없이 지하철표만 흘리고 나갔다. 왜? 우리는 아무래도 김치폭탄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파리에 들어오면서 김치 가방을 거꾸로 놓아 김치 국물이 차 바닥에 흘렸다. 이게 더운 차안에서 발효가 되면서 우리도 괴로울 정도였다. 이걸 누군가 맡았다면 기절했거나 기절하기 전에 차 밖으로 뛰쳐나갔을 거다^^
초반엔 파리로 잘 진입했으나 어디선가 길을 헤매기 시작하여 우리나라로 치자면 부천쯤 되는 파리 시외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모든 것을 볼 때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본다. 더우기 나이가 들면 새로운 것을 입력할 때 그와 비숫하다고 생각되는 것과 결부시켜 기억한다. 우리도 파리의 포뮬완은 한국으로 치자면 구로동 근처여.. 여기는 영동포 시장쯤이여 하면서 인식하고 기억했다.
오르세이 강변주차장에 무사히 파킹했다. 파리에선 도둑이 들끓는다고 하여 차 안에 아무것도 안보이게 단속을 잘 하고 나섰다. 공짜인 오르세이 박물관에 들어갔다. 인상파 이후의 그그림을 보았다. 클림트 로트랙 등 이름만 들었던 화가들의 진짜 그림을 보니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쩐지 감동이 밀려왔다. 만약 파리에 도착해서 바로 박물관을 보았다면 이해가 덜했겠지만 프랑스 시골을 돌아다니다 그림을 보니 왜 그런 그림이 그려졌는지 이해가 갔다. 미술시간에 배웠던 점묘법을 진짜로 들여다 봤다. 모네의 그림도 보았다. 내가 이유도 모르고 단지 외우기만 했던 중고교 미술시간이 단 한큐에 정리가 되었다.
인상파는 그냥 인상대로 그리는 것이다. 인상은 영어로 impression 이다. 마음에 그냥 press가 되는 거다. 화가들이 귀족이나 성직자들에게 고용되어 초상화나 성화를 그리다가 자신들의 마음에 보여지는 대로 그리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빛을 그리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형태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건 화가의 인간됨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고호가 그린 추수한 밀밭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낮잠자는 농부들의 그림은 고호 주변의 가장 흔한 풍경이었을 거다. 나도 밀밭을 보았거든.. 그렇지만 그걸 그린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에게 귀속되어 그리라는 것만 그리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을 그린다는 자신의 인간됨을 아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것일거다. 하지만 고호는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렸지만 자신이 그린 그림을 하나도 팔 수 없었다. 무엇을 선택할 건가 던져주는 밥과 내적 자유중에서..
클림트
오르세이에서의 소감을 문학적인 표현을 빌어 한다면, 거장들의 속삭임을 들은 것 같다는 것이다. 사춘기때 와서 보지 못한 것이 한이다. 그때 이 그림들을 보았다면 내 감수성이 좀더 정비가 되었을 것인데^^
차로 가서 강가에 앉아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막 먹고 나니 거기가 바또 무슈 선착장이었는지 배가 다가왔다. 좀 늦었더라면 쪽팔릴 뻔 했다^^
밥을 먹고 루브르로 향했다. 멀리 투명한 피라미드가 보였다. 오르세이 박물관이나 루브르나 궁을 개조해서 만든 것이라 멋있었다. 국제교사증도 할인이 안되고, 검색대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지하로 내려갔다. 좀 기분이 나빴다. 표를 사고 안내문을 구하는데 일본어 중국어판은 있는데 한국말판이 없는 것이었다. 아니 우리나라 관광객이 뿌리고 간 돈이 얼말텐데 .. 그냥 무심코 영문판을 집어들었다가 그 앞에 서있는 직원한테 코리안?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한번 째려주고 일행에게 돌아와서 다음부터 모든 안내소에 한국판은 없냐고 물어보자고 했다. 그러다보면 코리아란 나라가 있고, 그들을 위한 안내판을 만들지 않을까? 아니면 외교통상부나 영어잘하는 사람들이 각 관광지의 안내판을 한국말로 번역해다 주던가..
까페에서 넷이서 앉아 커피를 마시고 각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안내판을 펼쳐드니 중요한 건 사진과 함께 위치가 나와있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빨리 돌아다녀야 했다. 밀로의 비너스-중국사람들이 열명도 넘게 둘러싸고 왁자지껄 떠들면서 서로 돌아가며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짜증났다. 솔직히 이사람들 관광지에서 너무 ugly하다. 시끄럽고 매너없고.. 모나리자-그앞에 사람들이 많았는데 솔직히 좋은 줄 모르겠다. 그리로 가는 길에 본 요 밑의 그림이 더 좋았다.
성가정
이 그림은 성가정인데 뒤에 술취해 누워있는 사람이 요셉이고 앞에 젖먹는 어린아이가 예수이다. 마리아가 예수를 잃고 비탄에 젖은 그림은 많이 보지만 그녀가 튼실한 젖을 내놓고 아기 예수를 먹여 키운 엄마였다는 것은 종종 잊는다. 우리는 예수가 다 커서의 모습만 아는데 이렇게 젖먹고 큰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은 종종 잊는다. 더우기 아빠는 술취해서 혹은 피곤에 절어 누워있고, 엄마 젖을 먹고 있는 그냥 평범한 가정의 아이로 자라난 예수는 옆집 아이같다. 누가 그렸는지도 모르겠다.
함무라비 법전은 법전이라고 해서 책인줄 알았더니 까만 돌맹이에 새긴거였다. 서둘러 보느라고 돌아다녔건만 나폴레옹의 관은 보지 봇하고 약속한 시간에 왕언니와 대구아지매를 만났다. 물어보니 나폴레옹의 관은 당분간 없단다.
루브르를 본 소감은 별로 개운치 않았다, 이집트에서 빼앗아다 놓은 것, 그리스에서 가져다 놓은 것.. 정말 남의 나라 기둥뿌리까지 뽑아다가 우리한테 돈받고 보여주는 심뽀가 붠지 굼금했다.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서문에서 혹자는 루브르를 세계문화유적의 포로수용소라고 했다고 쓴걸 보았다. 정말 세계문화유적의 포로수용소였다. 포로수용소면 돌려줘야지.. 이집트의 기둥뿌리 돌려주고, 남의 무덤 파헤친 것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그래야지. 아직도 강제로 빼앗아다 놓은 걸 안돌려주다니 이런 야만적인 일이 있을 수 있나? 우리나라 것도 아직 안돌려준게 있을껄? 달라고 해도 안준다지? 대영박물관도 남의 것 뺏어다 놓긴 했지만 그래서 그런지 공짜던데.. 국제교사증도 할인안해주고 말이야. 아주 나쁜놈들이다.
루브르에서 나오면서 지하철표가 두장 남아 앞에 가는 한국남학생한테 주었다. 고맙단 인사도 안하고 받아서는 야! 저기 파는데다 하면서 기념품 판매소로 쫓아가는데 쫓아가서 지하철표 도로 뺏고 한대 쥐어박고 싶었다.
루브르에서 나와 퐁네프로 걸었다, 퐁네프 다리 앞의 식당에서 좀 이른 저녁을 먹었다. 무슨 반건 소고기같은게 나와 음식을 남겼다. 아깝다. 그 까페 옆에 방앗간(사마리탄 백화점)이 있어서 네마리의 참새가 들어갔다. 파란 무늬 원피스가 있어 입어보았는데 나의 튀어나온 배를 강조해주어서 벗어놓고 나왔다ㅠㅠ
차를 타고 노틀담 성당으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백화점에서 너무 돌아다녀서 그냥 성당앞을 지나가기로 했다. 차로.. 방사선도로에서 우리의 길찾기는 왕언니가 제안한 대로 무조건 직진하다 이정표가 나오면 따라가기였다. 이골목저골목 회전하다보면 더 헤매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틀담을 지나 무조건 직진하다 다음번 목적지인 베르사이유 이정표를 보고 파리 시내를 벗어났다.
일찍 파리시외의 베르사이유에 갔으나 싼 숙소를 찾는다고 돌아다니다 또 헤매기 시작하여 10시가 넘도록 숙소를 찾아 헤맸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니 길을 물을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너무 지친 상태에서 비싼 ibis호텔이 있길래 거길 들어갔다. 포뮬완이 제일 싸고 그담이 에탑, 그담이 이비스이다. 그 방은 목욕탕(욕조가 있는)과 화장실이 있었다.너무 깨끗하고 좋아서 밥해먹기가 미안해서 밥도 안해먹고 그냥 잠만 자고 나왔다. 아침에 일어나 지도를 확인해 보니 우리는 베르사이유에서 다시 파리쪽으로 올라가 poissy라는 곳에 와 있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