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사람을 살리는 문학
어느 시인이 있었습니다.
가끔가다 어릴 때 문학소녀를 꿈꿨으나 속절없이 늙어가는
아줌마들 모임에 초대받았습니다.
그 모임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울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자식하고 둘이 사는데 자식이 죽어라 말도 안 듣고
공부도 안했더랍니다. 남의 집 일을 해도 시가 좋아서
번 돈으로 시집을 사서 좋은 시는 베껴서 화장실에도 붙여놓고
안방에도 붙여놓고 부엌에도 붙여 놓고 했답니다.
화장실에 앉아서 시를 읽을라치면 시간이 좀 걸리는데
자식은 엄마가 그러는게 싫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실을
먼저 차지하고 안나오더랍니다.
어느날 자식놈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이 보자고 하길래 이놈이 무슨
말썽을 또 피웠나 걱정을 하며 갔더랍니다. 그랬더니 교장이 엄마
손을 잡으며 어찌 자식을 이리 훌륭하게 키웠느냐고 하더랍니다.
곡절인 즉슨, 교장선생님이 학교 조회시간에 김춘수의 꽃을 들려주고
이 시의 제목과 시인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전교 1등하는 놈 무슨 경시대회
일등하는 놈 아무도 모르더랍니다. 그런데 저 뒤에서 누가 손을 들기에
조회대로 불러서 물어봤더니 시인과 시의 제목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더랍니다.
교장선생님이 칭찬을 해주니 그때부터 반 아이들이 이 아이를 다시 봤겠지요.
그때부터 성적이 쑥쑥 올라가더니 전교 20등인가까지 올라가더랍니다.
교장선생님이 아이에게 어찌 그 시를 알았냐고 물었더니 우리 엄마가
화장실에 붙여 놓은 시가 바로 이 시라고 하더랍니다.
엄마 화장실에 못 들어가게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다보니 안
읽을라야 안 읽을 수 없었겠지요..
학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엄마는 아이가 공부도 못하고 말안듣는
아이로만 알고 있었는데, 교장선생님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문학이 사람을
살렸다고 울더랍니다.
몇년이 흘러 이 시인이 국어과 중등교사 연수에 가서 이 이야기를 잠깐 했더랍니다
그랬더니 그 교사중에 하나가 손을 들더니 그 이야기가 바로 자기 이야기라고
했답니다. 그 홀어머니의 말썽장이 아들이 국어 교사가 되었던 거지요.
이런 드라마틱한 일을 누가 믿겠냐고 말씀하셨어요.
여기서 김춘수의 꽃 나갑니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